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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피시옵고

귤ㄹ 2024. 10. 16. 13:16

@ captain_OTK님의 커미션입니다.

유혈, 고어 묘사가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W. 돌리

“저 없으면 어떻게 사시려고요?”

 

“개소리야……. 뽕 맞았어?”

 

“팀장님, 저 없으면 죽어요.”

 

“멋대로 확신하지 마. 금붕어 똥처럼 널 달고 나온 것도 짜증 나서 죽을 것 같으니까.”

 

평소와 다르게 거래 장소에 따라가겠다느니, 어쩌느니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레오 탓에 주성철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졌다. 역시 이 자식을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다. 데려가지 않으면 죽여버릴 거라는 말이 꼭 진심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달고 오긴 했지만 말이다.

 

레오는 마음만 먹는다면 정말로 성철을 죽일 수 있는 인간이었고 사고사나 미결 사건으로 위장해 감옥에 들어가지 않을 만한 능력도 있었다. 죽는 건 사절이다. 짜증스런 표정으로 차를 몰아 인천항 인근의 한 부두에 도착했다. 거래 장소는 푸른색의 작은 어선 앞, 적갈색 컨테이너 안쪽이다. 서류 가방 속의 하이퍼 한 뭉치가 짜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문을 열어준 똘마니들은 주성철과 레오가 완전히 몸을 들이고 나자 곧장 입구를 닫고 바깥에서 잠갔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고 중얼거리는 주성철의 뒤에서 레오는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입수한 정보가 사실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이 거래가 끝나는 순간 주성철은 칼이나 총알, 둘 중 하나를 심장께에 맞게 될 것이다.

 

목격자를 남겨둘 필요가 없으니 레오 자신에게는 거래를 제안할 것이 틀림없다. 굳이 손에 피를 더 묻히기보단 돈을 좀 나눠주고 ‘먹고 떨어’지라는 태도를 보일지도 모르겠다. 황제와 애첩처럼, 레오가 주성철을 아낀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주성철 곁에서라면 레오는 그야말로 폭군이었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애첩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죽일 수 있는, 심지어 애첩마저도 죽일 수 있는 그런 폭군.

 

주성철은 주성철대로 심기가 불편했다. 이 바닥 일을 한두 해 하는 것도 아닌데, 약이 급한 입장인 상대 쪽에서 문을 잠그고 뒤를 막아버리는 게 고깝다. 하이퍼를 가지고 있는 건 이쪽이다. 당연히 숙이고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닌가? 굳이 하이퍼 때문이 아니더라도 타고나길 우두머리의 성정인 주성철에게,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듯 구는 상대의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대 조직은 신생으로,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에 하이퍼를 풀었다. 중독된 약쟁이들에게 서서히 값을 올려 받는 방식으로 신뢰와 고정 고객을 모두 얻으며 물 밑에서 이름을 알려가는 중이었다. 따라서 새파랗게 어렸다. 놈들의 치기와 만용은 주성철 입장에선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거래 장소에 흰 양복은 어울리지 않는다. 주성철은 레오를 늘 이 새끼, 저 새끼 정도로 칭하곤 했지만 그가 늘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이견이 없었다. 피가 튀지 않으리라는 자신감. 레오라면 그럴 수 있다. 레오이기에 그럴 수 있다. 상대 조직의 애송이들이 같잖은 흰 재킷을 입고 나온 것에 간신히 실소를 감췄다.

 

젊다기보단 어린 얼굴들이었다. 의뭉스러움을 숨기지 못하는, 새파란 표정.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안색에 온 신경을 기울이던 성철은 제 뒤에 서 있는 레오의 어깨에 순간 힘이 들어가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어울리지도 않는 새하얀 재킷 차림의 한 놈이 보스턴 백을 들고 왔다.

 

“내려놔.”

 

“물건부터 보여주셔야지, 주 팀장님.”

 

“말이 짧다? 새파랗게 어린 새끼들이.”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안다던데, 주 팀장도 말 짧은 건 마찬가지 아닌가?”

 

“닥치고 돈 가방이나 가져와. 계수기는 우리 쪽에서 챙겼으니까.”

 

“우릴 못 믿어?”

 

“존대하란 말도 못 알아 쳐 먹는 새끼들한테 뭘 바라.”

 

“섭섭하게 구시네. 야, 가방.”

 

목이며 손등을 가리지 않고 드러나는 살갗마다 문신을 한, 앳된 얼굴의 부하 하나가 고개를 숙이며 보스턴 백을 가져왔다. 저 정도 사이즈에 무게면 금액은 얼추 맞겠다. 위조지폐가 아닌지 확인한 뒤 계수기에 집어넣으면 된다. 주성철은 개처럼 돈 냄새를 맡았다. 부하가 보스턴 백을 발치에 내려놓는 순간, 레오는 허리춤의 권총을 꺼냈다. 그대로 쐈다. 한 손으론 주성철의 목덜미를 단단히 쥔 채였다.

 

보스가 우선이었다. 다음은 옆에서 거들먹거리던 놈. 그 뒤는 보스턴 백을 가져온 똘마니. 총소리에도 바깥은 고요했다.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주성철을 쏜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레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벨라 돈나, 로 시작하는,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청혼하는 가난한 청년 시점의 가곡이다. 가벼운 비올라 소리가 귓가에 선하다. 연주하는 이는 없었으나 레오는 지금 그 누구보다도 들떴다.

 

북소리에 맞춰 총을 쏜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 같다. 아름다운 동작으로, 레오는 군더더기 없이 팔을 움직인다. 사람을 죽일 때에는 덧붙임이 필요 없다. 그저 머리나 가슴을 겨누고 쏘면 된다. 권총의 안전 장치는 이미 풀려 있다. 컨테이너 안은 아비규환이다. 바깥에서 문을 열고, 주성철이 저렇게 요란하게 죽다니, 하고 들어온 똘마니들의 이마를 쏜다.

 

머리가 날아가며 뇌수가 튄다. 뇌수는 분홍색. 피의 선홍과는 판이하다. 튀어 나가는 살점과 두개골 조각과 내장-뇌도 내장으로 친다면-의 갈기갈기 찢어진 흔적들이 바닥으로 퍼진다. 레오는 약을 해본 적 없다. 그러나 약을 한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름답다. 주성철은 여전히 상황을 눈치채지 못 한 채 자신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다.

 

손바닥 아래에서 맥이 펄떡펄떡 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된 것 같다. 주성철의 맥은 온전히 레오가 쥐고 있다. 조금만 더 힘을 준다면 죽을 수도 있다. 그리 쉽게 죽진 않겠지만, 어쨌든 죽는다면 레오의 손 안에서여야 한다. 환희에 가득 찬 찬송가 같은 것이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컨테이너 안의 피비린내. 녹슨 쇠의 냄새인지, 뭔지 모를 끔찍한 냄새. 그러나 레오에게는 그저 아름답다. 주성철은 이 새끼가 또 나 몰래 무슨 짓을 벌이는 거야, 생각하며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발버둥 친다. 그러나 커다란 레오의 손을 뿌리치기엔 역부족이다. 주 팀장은 분명 덩치 큰 성인 남성이나 그의 힘에 당할 재간이 없다. 어쩌면, 레오의 권위가 주는 힘일지도 모른다.

 

총성이 끝났다.

 

뇌우가 끝난 뒤의 고요함이 컨테이너를 가득 채운다.

 

열린 입구로부터 들이치는 빛.

 

구원인가, 구조인가.

 

“하하, 주 팀장님. 제가 그랬죠. 저 없으면 못 산다고.”

 

“이……. 미친 새끼가. 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거겠죠?”

 

“남의 거래처를!”

 

“남? 주 팀장님과 제가 남인가요? 섭섭한데요.”

 

“무슨 꿍꿍이야. 말해.”

 

“지껄인다고 말이라면 전 침묵을 택하겠습니다.”

 

“무슨 개소리야.”

 

“Tra il dire e il fare c'è di mezzo il mare.”

 

“무슨 개소, 윽.”

 

피 냄새가 풍기는 손으로 레오는 주성철의 뺨을 감쌌다. 한 손안에 들어차는 턱이 기껍다. 이 얼굴이 모조리 제 것이라면. 몸이, 마음이, 나아가 모든 영혼이 나의 것이라면 신이시여, 제가 속죄하도록 허락해주시겠나이까. 레오는 주성철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부딪혔다. 거친 키스였기에 앞니끼리 부딪히며 입술이 아렸다. 그러나 상관 없었다.

 

질척하게 혀를 섞으니 저도 모르게 마주 움직이는 주 팀장은 의외로 깜찍한 구석이 있다. 일종의 버릇 같은 것이다. 개에게 배변 훈련을 시키거나 고양이가 밖에 나가지 못하게 방묘문을 설치하듯, 레오는 주 팀장을 길들였다. 만족스런 웃음을 짓고 있자니 주먹이 배에 꽂혔다. 이 역시 예상한 움직임이다.

 

주성철은 레오의 배에 주먹을 내리꽂으며 그를 뿌리치기 위해 애썼다. 피비린내 나는 몸으로 자신을 안는 것이 불결하다. 달콤한 향수 냄새라면 더 기분이 더러웠을 테지만, 어쩌면 레오가 하는 행동이라 모두 불쾌한 것일 테지만, 저도 모르게 뻐근해지는 아랫배를 부정하고 싶었다.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저지르는 것 같았다.

 

배와 가슴에 연달아 꽂히는 주먹에는 레오도 배길 바가 못 되었다.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떨어졌으나 그 숨에는 분명 웃음이 섞여 있었다. 베이지 색 트렌치코트에 튄 피는 모두 남의 것. 입가의 피는 레오의 것. 주 팀장이 혀와 입술을 가리지 않고 깨문 탓에 배어난, 레오 자신의 피. 길들이는 맛이 있다. 길들여지지 않아서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레오는 주춤주춤 물러나 바닥의 칼을 집었다. 레오를 저지하기 위해 들이닥치던 조직원 하나가 들고 있떤 단도다. 물론 죽으면서 놓쳤지만 말이다.

 

안는 듯 다가가 주성철의 어깨에 칼을 꽂았다. 어깨에 파고드는, 뜨거운, 강렬한 감각으로 주성철은 몸을 떨었다. 성감과는 비슷하지만 차이점은 확연하다. 적어도 이 고통은 주성철에게 쾌감을 안겨주진 않았다. 그러나 레오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근육과 근육 틈을 파고드는, 치명상은 피한 얕은 파고듬이 마치 제가 주성철의 몸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기에.

 

칼은 매개였고 이렇게라도 주 팀장에게 닿을 수 있다면 좋았다. 그의 몸 깊은 곳이 어떤 온도인지, 얼마나 조이는지, 어떻게 헐떡거리는지 알 수 있다면 족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올린 주성철은 다치지 않은 쪽 팔로, 마지막 힘을 다해 레오의 뺨을 주먹으로 휘갈겼다. 피할 수 있었으나 레오는 순순히 맞았다. 이마저도 쾌감이니.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의 미움을 받느니라[1]

 

주성철은 미련하고 레오는 거만하다. 이들에게 벌이 찾아올 것은 분명하다. 터진 입 안을 혀로 훑으며 레오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코트에 튄 피가 주성철의 것이 아닌 것만으로도 그는 감사해야 할 텐데. 그러나 기어오르는 것도 봐줄 만하다. 주 팀장은 어깨의 칼을 뽑지도, 어쩌지도 못한 채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뽑는다면 피가 솟을 것이다. 뽑지 않는다면 근육들이 미세하게 다쳐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도 저도 하지 못 하는 주성철에게 다가가 레오는 다시 입을 맞춘다. 검은 셔츠라 핏자국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피 냄새와 수컷 냄새는 진하다. 아침에 뿌렸을 향수 냄새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우리 팀장님,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이런 걸 뿌리셨을까? 그렇게 중얼거리는 동안 볼이 부어 발음이 웅얼거린다.

 

주성철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한다. 레오가 곧장 입술을 물어뜯은 탓이다. 그렇잖아도 고통을 참느라 꽉 깨물어, 성한 곳 없는 입술을 훑는 혀로 입 안 모든 곳이 따끔거린다. 레오는 주성철의 입 안이 모두 자기 것이라는 듯 헤집는다. 마치 그의 주인인 것처럼. 혹은 신일지도 모른다. 주성철의 종교이고 법전이 될, 믿고 싶지 않은 신의 형태.

 

어두운 컨테이너 안으로 어선의 불빛이 슬쩍 비쳤다. 그 빛에 의존해 레오는 주성철의 재킷을 벗기고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 하나 풀었다. 뜯을 수도 있었지만 굳이 단정하게 푼 것은 자신의 여유를 보여주기 위해. 내가 당신을 이만큼 지배하고 있으니 당신 나의 종복이 되길, 그렇게 말하기 위해.

 

제 트렌치 코트를 벗어 던지고 베스트와 와이셔츠를 걷어 올려 허리께의 거미 문신이 드러난다. 약쟁이들은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환상을 본대요. 알아요? 그 말에 주성철은 좆 까, 하고 말한다. 제가 벌레 같아요? 주 팀장님은 약쟁이도 아니시면서. 그렇게 말하며 웃는 레오는 선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청년의, 흰 웃음이다.

 

커다란 몸이 부대꼈다. 주성철은 원래도 덩치가 큰 편이지만 레오는 그를 이길 만큼 크다. 시체들 사이에서 산 몸끼리 마주친다. 차가워질, 경직이 찾아오고 있는 몸들 가운데에서 레오와 주성철의 몸은 흥분으로 굳는다. 떨린다. 힘이 들어간다. 레오는 주성철에게 입을 맞춘다. 주성철은 생각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인가.

 

애초에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혹하지 말았어야 했다. 일찍 죽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돈은 아름답고 성철은 탐욕스럽다. 레오의 신체 역시 아름답고 성철은 간혹 그를 탐하고 싶다는 생각을 스스로 부정한다. 아랫배가 뻐근하고 뒷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애써 무시하면서 말이다.

 

레오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다고 느낀다. 사실 눈에 띄는 계획이랄 건 없었다. 레오는 즉흥적이고, 즐겁고, 쾌활한 청년이니까. 단지 제 의도대로 주성철이 움직이는 게 즐거울 따름이다. 두꺼운 허리를 안고 긴장으로 굳은 가슴을 주무른다. 와이셔츠와 근육이 손 아래에서 함께 뭉개지는 감각이 기분 좋다.

 

주성철의 구둣발이 정강이를 걷어찬다. 내일이면 멍이 들 수도 있겠다. 다음 번에는 다리를 묶어놓고 해야 할까. 혹은 손목이나, 온몸이 될 수도. 피비린내 가득한 컨테이너에서는 레오와 성철의 숨소리만 들린다. 시체는 숨을 쉬지 않는다. 키스하지 않는다. 옷을 벗기지도 않는다. 돈 가방을 챙길 타이밍을 생각하며 주성철은 레오에게 보조를 맞춰 혀를 얽는다.

 

습관처럼 이 미친놈에게 들어맞는 퍼즐 조각이 되어 가는 자신은 꼭 미친 것 같다. 병원에 가더라도 치료할 수 없는 감각이다. 이토록 강렬하고 두근거리고 끓어오르는 감정은 신이 아니면 치유할 수 없다. 주성철은 레오가 자신의 유일신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가 신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는데도 계속해서 뿌리치려 했다.

 

레오의 손이 성철의 와이셔츠 자락을 들치고 허리로 파고들었다. 실크 셔츠가 구겨졌다. 더러워지면 새로 사줄 게요. 그렇게 흥얼거리듯 말하는 레오의 입술을 깨물자 그는 오히려 즐겁다는 듯 소리 내어 웃으며 어깨에 꽂힌 칼을 슬쩍 비틀었다. 비명은 레오의 입 속으로 먹혀 들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그래서 레오는 자신이 주성철을 온전히 삼킨 듯한 감각을 느꼈다. 수컷의 신음이란, 굴종이란, 치욕스럽고 아름답다.

 

이 미친 자식에게서 벗어나려면 죽는 수밖에 없나. 총으로 쏜다면? 칼로 찌른다면? 그도 아니면 목을 조르거나……. 몽롱해. 약을 하면 이런 기분인가. 무엇에 취한지도 모르는 채로 취해 있어. 피비린내에 머리가 어지러워. 수없이 맡아 본 냄새인데도. 술이나 담배와는 질 자체가 다른 중독. 사자의 울음소리는 고주파라 근육을 굳게 한다던데, 이 새끼의 목소리도 그런 걸까. 그르렁거리는 소리로 나를 옭아매고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지게 하는. 어떤 암흑보다 어두운 지옥으로 끌어들이려는 신이 있다면 레오가 틀림없다. 진실이라곤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이 짐승에게, 나는 모든 것을 내어줘야만 벗어날 수 있다. 아니, 내어주더라도 불가능하다. 스스로의 의지로 죽어야만 끝날지도 모르겠다. 그의 유희에 나의 죽음은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니.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2]

 

이 신은 어린 양이 죽기를 간절히 바라는지도 모른다.

 


[1] 잠언 24장 9절.

[2] 이사야서 20장 7절.